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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hoes - 대나무 숲으로부터 그리고 대나무 숲으로

전시장소 불일미술관 1관 전시기간 2017년 9월 1일 ~ 2017년 9월 9일 전시작가 조은령
작업노트 –2017

Echoes
- 대나무 숲으로 그리고 대나무 숲으로부터-

귀가 아주 긴 임금님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문왕이라고 알려져 있고, 다른 곳에서는 미노스왕이라고 한다. 하여간 그들은 비밀을 가졌고, 그들의 이발사는 그 비밀을 간직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그 이발사 혹은 모자 장이들은 임금님의 비밀을 대나무 숲에다 털어 놓았다. 혹은 털어 놓은 곳에서 대나무가 자랐다. 대나무에 바람이 일자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울려 퍼졌다.

2016년 9월
우연의 반복이었다. 지난 7월이었다. 이전에 봐 두었던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었다. 그런데 그 사이 서고를 정리를 새로 한 모양이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임어당林語堂의 수필집은 없었고 노신魯迅의 책들만 가득했다. 어쩔 수 없이 노신의 『잡설雜說』을 대출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했다. 채 읽지도, 되돌려주지도 못하고 곁에 밀어 놓았다. 결국 연체료를 물고 반납하려고 도서관을 찾았는데, 서고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책들 중에 『Echoes from the Past』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는 6세기에 조성되어 1909년에서 1911년경까지 집중적으로 파괴되었다는 향단산 Xiangtangshan 석굴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거의 모든 조각품에 머리와 손이 없어진 석굴의 조각품과 각지에 흩어진 불상의 파편을 3D 스케닝으로 찾는 작업들이었다. 그렇게 가상의 복원된 디지털 석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진 속 잘려 나온 불상의 파편들은 시리게 아름다웠다.

2017년 1월
뜬금없이 찾아간 전남 송광사松廣寺에는 전각들마다 구도와 염원의 목소리들이 넘치고 있었다. 그 소리들은 차가운 계곡에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울려 퍼졌고, 하늘에 가득한 별마저 쏟아질 듯 소란스러웠다.1월 말 구정 연휴의 마지막이라 그랬을까? 처음 가 본 마당에 무엇을 예상하거나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영하의 날씨에도 송광사는 뜨거운 곳이었다. 거기에 한가하게 쉴 자리는 없었다. 송광사 뒤쪽으로 가파른 산길과 능선과 대나무 숲을 지나면 불일암佛日庵으로 이어졌다. 아침의 햇살이 가득해서 따뜻하고 바람에 들리는 풍경소리가 있는 곳이었다. 송광사와 불일암 사이에는 대나무 숲의 고요함이 있었다.

2017년 4월
교토 아라시야마嵐山에 도착한 것은 해가 저물 무렵이었다. 높게 솟은 대나무의 잎 사이로 붉게 물들었다가 어둑해지는 저녁 하늘이 보였다. 곧바로 어둠이 밀려 내려오고, 가로등도 없는 아라시야마의 대나무 숲속에는 징검다리 같이 빛의 길이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댓잎 사이로 달빛이 부서지듯 내려오고 있었다. 그 빛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보다 먼저 대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흔들림이 퍼져 나가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멀리 흘러갔다. 다시 정적이다.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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