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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2년 주제세미나 원고입니다.
작성자 우먼아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6-09 11:28    조회 1,07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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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세미나 원고글 게재합니다.

이번 세미나는 '메타수묵의 길, 생동하는 수묵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주제로 이건수 평론가님(미술평론가, 2021 전남국제비엔날레 총감독)께서 진행해 주실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메타수묵의 길, 생동하는 수묵의 새로운 출발

2021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의 실행 과정을 중심으로

이건수 2021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총감독

 

2회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오채찬란 모노크롬이라는 주제가 의미하듯 다채로운 현대수묵의 모습으로 구성된다. 옛 화론에 나오듯이 먹빛 속에 적, , , , 황이라는 우주의 색이 다 들어 있다는 의미, 그래서 먹빛은 완전한 색이라는 의미와 함께, 먹빛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 다양한 기법과 표현 방식에 따라 먹은 그 한가지의 색에만 머무르지 않는 다채로움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노크롬은 직역하면 단색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으나 수묵의 의역어로서 수묵이 지니고 있는 미니멀한 색채와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수묵이라는 단어가 재료적 성질을 강하게 품고 있으면서 우리 언어중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모노크롬은 그런 제한을 뛰어넘는 좀 더 국제적인 수묵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온갖 색채가 화려한 단색화, 채색으로 빛나는 수묵이라니 모순으로 보이지만 수묵이 갖고 있는 다이내믹한 힘과 기운생동하는 생명력을 반어적이고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제목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번 수묵비엔날레는 블랙과 화이트라는 수묵의 단순화된 양식에서 벗어나 우리시대에 맞는 다채로운 수묵의 변화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동양화는 채색화 전통과 수묵화 전통으로 구분된다. 채색화는 주로 벽화나 민화 같은 색채를 활용하기에 거리낌이 없었던 시대의 그림이고 수묵화는 주로 문인화 같은 선비나 양반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책의 기운과 문자의 향기가 가득 담긴 그림이다. 먹의 가치를 색의 효과 보다 높이 샀던, 그리고 그 속에서 육체성 보다는 정신성을 발견하고자 했던 그림이다. 어찌 보면 이번 수묵비엔날레는 채색화의 전통과 수묵화의 전통이 어우러진 온전한 동양화의 정체성을 재발견하고 우리시대 수묵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의미 있는 기회이다. 그래서 오채찬란 모노크롬’, 과격하게 직역하면 컬러풀한 수묵이라는 역설적인 의미의 주제를 만들게 되었다.

 

지난 제1회 수묵비엔날레가 우리 수묵의 전반적인 지형도를 보여준 전시였다면 이번 비엔날레는 수묵의 확산과 외연을 통해 질적인 의미의 쇄신을 이루고자 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수묵의 고답적 인상과 지엽적 편견을 이제는 떨쳐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시대의 철학과 관념에 젖어 있는 화풍을 고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적 유산을 되살려 어떻게 현대적 시각에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획득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해야할 시기다.

미술시장에서 언제나 뒤편에 물러나 있는 수묵의 소비적 현실, 전통화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괄시하고 무시하는 정책적 현실은 전통화에 계보를 잇는 모든 화가들에게 좌절과 실망을 안겨다 주고 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선 수묵이 널리 소비되고 소통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겠다. 우리의 의식주에 우리의 미적 정신이 녹아들어갈 수 있는 생활 속의 수묵으로 살려내야 한다. ‘수묵의 대중화대중의 수묵화에서 비롯된다. 수묵의 미적 가치를 대중들이 인식하고 즐겨 향유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정체성 있는 스타작가들을 발굴하고 탄생시켜야 하겠다.

수묵비엔날레가 주안점으로 삼고 있는 수묵의 국제화는 한국미술의 근원적 정체성을 숙고하고 미래지향적인 설계를 구체적으로 실행함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서구미술사의 논리로 확고하게 구성된 세계미술의 판도에서 우리의 지역성을 오히려 더 특수화 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로벌리즘의 판형 위에 로컬리즘이라는 컨텐츠를 재발견하여 획일화된 세계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출구를 제시할 수 있는 수준 있는 글로컬리즘을 획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K팝을 위시한 한류의 방법론은 차별화된 국제화로 인해 성공 가능했다. 한국미술의 한류를 꿈꾸는 이번 수묵비엔날레는 우리의 고유한 미감과 미적 정서의 전통이 얼마나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를 모색하고 실험하는 수묵 브랜드의 론칭 장이었으면 좋겠다. 수묵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우리의 미술계뿐만 아니라 생활 환경 전반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니며 대우 받고 소비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수묵비엔날레가 우리의 미감이 지닌 우수성을 재발견하고 그것이 여러 다른 미적 성취들 사이에서도 생존력을 지닐 수 있게 하는 미의 향연이 되길 기대한다.

 

작년 9월 말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특별기획전 <부릉부릉 수묵시동>을 개최했다. 도시재생과 지역청년예술인과의 협업을 추구하며 목포 근대문화유산의 거리를 중심으로 약 한달 동안 열린 특별전은 짧았지만 많은 시사점도 보여주었다. 먼저 태풍과 홍수 등 자연재해와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방해요인을 돌파하는데 많은 수고가 필요했고, 현대미술을 수용할 수 있는 전시공간의 부족은 여전히 비엔날레가 극복해야할 숙제로 남겨졌다.

참여작가들 중 상당부분의 작가를 동양화과 출신으로 선정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수묵화가 없어서 놀라는 기색도 관찰할 수가 있었다. 그만큼 현대수묵의 표현 방식과 소통 방향이 많이 달라졌음을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우리시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수묵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시대의 수묵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 전통회화의 전개과정과 방법론도 알아야 하지만 우리시대 미술의 현재적 위상과 구조 체계 또한 알아야 한다.

전남 목포와 진도는 우리 전통예술문화의 고향으로서 수묵이라는 콘텐츠를 잡았다. 수묵화비엔날레라고 하지 않고 수묵비엔날레라고 한 것은 전통 수묵화를 옛 법에만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수묵화로 진화시키기 위한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된다. 지필묵이라는 전통적 재료나 수묵산수를 중심으로 한 고답적 내용의 수묵화적 전통을 계승하는 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재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묵정신을 담은 모든 현대미술을 수용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 명칭이라 할 수 있겠다. 수묵정신이라는 것은 분명 서구 미술사의 전개 과정과는 다른 역사적·사상적 배경과 유래를 지닌 예술의지를 의미하며, 그 정신 속에서 우리 미술의 고유한 정체성과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비엔날레라는 국제적이고 현대적인 미술행사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미술의 모습은 밑바탕에 자리 잡으며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전통의 재현과 답습을 지속하면서 지나간 시대의 가치관을 고정시키는 인간문화재 발굴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현재 진행형의 수묵의 모습을 보여주고 과거의 역사적 수묵은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주는 근원적 가치로서 소개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하여 수묵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 수묵비엔날레의 올바른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된 미래와 새로운 과거가 공존하고 교차하는 미술 소통의 장이 될 때 수묵비엔날레는 진정한 역할을 다했다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비엔날레는 대개 시대와 예술과 지역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전통성과 현대성, 전문성과 대중성, 국제성과 지역성이라는 세 가지 축이 교차되는 지점에 비엔날레의 위상이 정해진다. 이번 수묵비엔날레는 전통의 가치를 되살리는 현대성, 전문성의 차원을 넘어선 보편적인 예술언어, 국제적 감각과 지역적 특성을 동시에 획득하는 차별화된 비엔날레로 구성하려 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수묵화가 있다.

비엔날레가 소수 미술인들의 축제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술에 친숙하지 못했던 일반인들에게 다가서는 비엔날레가 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시간적 준비와 예술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사실 현재 목포나 진도에서 현대미술을 개념에 맞도록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그 제한된 현실 속에서 이번 비엔날레의 승부수는 전시 내용의 진실성과 다른 비엔날레에선 느낄 수 없는 경험의 차별성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요한 관점의 하나는 어떻게 생활 속에 우리의 수묵문화를 젖어들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복 속에 우리의 전통적인 미감과 디자인 정신을 담고, 우리의 음식을 담는 그릇 속에 서양식 요리와는 다른 철학을 세팅하고, 우리의 가구나 집 속에 사물과 공간이 차지하는 여백의 정신을 담는다면, 한계에 도달한 획일화된 의식주 문화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을 지금 우리시대의 생활 속에 되살리는데 그것도 수묵화의 부활 속에서 모색해보자는 게 이번 비엔날레의 저변에 담긴 취지이다.

브라질의 보사노바나 아르헨티나의 탱고라는 리듬이 전 세계에서 보편성을 획득했던 이유는 그 리듬을 피아노, 베이스, 드럼이라는 재즈 트리오의 보편화된 악기로 전 세계 연주자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녹여낸 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통수묵에서 느껴지는 고유한 뉘앙스를 보편화된 구조 속에 녹여내는 것을 성공할 때 우리 수묵의 국제화, 대중화, 브랜드화는 가능해 질 것이라 확신한다.

아쉽게도 출품되지는 못했지만 이번 비엔날레의 정신을 담은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들라면 나는 수화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수묵정신을 담은 진정한 우리시대의 수묵화이다. 그것은 우리의 현대미술이 서양미술사의 전개 과정 끝에 주입된 외래적인 파생물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미학적 전통의 장구한 흐름 속에서 축적되고 농축된 질감과 감성에서 형성된 것임을 증거한다. 영화 <기생충>의 성공과 함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란 말이 많이 회자되었다. 과연 오롯이 한국적인 것이 있을까마는 오래 전에 김환기는 말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전라남도의 전역과 연계하여 묵향을 퍼트린다. 목포와 진도를 중심으로 한 본 전시, 광주 아시아문화전당과 신안 조희룡미술관을 포함한 4개의 특별전, 그리고 9개 시군의 기념전 등이 펼쳐진다. 본 도록에 실린 전시만을 개략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비엔날레1<현대수묵전>은 수묵의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시대와 경계를 초월해 어떻게 타 장르와 뒤섞이고 흔적을 남겼는지, ‘서양화 같은 동양화, 동양화 같은 서양화가 전시된다. 비엔날레2<전통의 맥전>은 수묵전통의 모티프를 품고 있으면서 수묵화와 채색화가 함께 어우러진 동양화의 완성된 포용력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비엔날레3<수묵정신전>은 지필묵이라는 본래적 재료와 기법을 초월하여 어떻게 수묵의 정신성이 구현되는가를 보여주는 국내외 작가들의 전시이며, 코로나19 이후의 대안적 전시방법에 대한 제안으로써 거대화면에 미디어 동영상 형식으로 전개되는 전시이다. 일종의 디지털수묵전으로서 시공간적 제한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되겠다. 역시 비엔날레3<신세대 도원경전>90년대 포스트모던 이후의 젊은 세대 작가들이 펼치는 사적이고 일상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소소한 감수성을 느끼게 해주는 전시이다. 진도의 운림산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비엔날레 4,5<생활 속의 디자인 수묵전>은 우리의 의식주에 어떻게 수묵정신이 녹아들어갈 수 있을까를 모색하지만 단순히 직접적인 디자인의 표출이 아니라 그 디자인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순수한 수묵적 정신성에 초점을 맞춘다. 비엔날레6관의 <묵연(墨緣)>은 한국-홍콩 작가의 교류전으로 전라남도 작가들과 홍콩 작가들의 상생과 화합의 수묵이야기를 펼친다. 특별전 중의 하나인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의 <의재와 남농의 화맥전>은 소치 허련으로부터 내려오는 남도의 화맥과 그 계보를 정리할 수 있는 전시이다.

수묵은 물로 쓴 그림이다. 물로 그린 글씨다. 물이라는 유동성의 액체는 정지와 운동 사이에서 흔들린다. 변화하고 생성하며 자유롭다. 낮은 곳으로 스며들라 하고 텅 빈 곳을 채우려 한다. 완전히 제어할 수 없는 이 지극한 자연스러움을 의미 있게 길들이는 것이 문명이고 치수(治水)이다. 치수는 도()를 만들고 그 길은 평안을 낳는다.

진수무향(眞水無香). 참된 물은 향기가 없다. 모든 덧입혀진 것들을 제거하고 수묵은 결국 무채색의 빛나는 아우라를 방사한다. 이 얼룩진 빛남 속에서 삶의 속됨과 불순물들은 정화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그 모노크롬의 잿빛은 모든 색채의 찬란함을 알고 있으며 그 광채의 시작과 끝에 자리하는 것이다. 물과 먹에 묻는다. 길은 어디에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