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노신경 展 한옥갤러리 4/29-5/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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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우먼아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작성일 16-04-28 11:19 조회 7,868회 댓글 0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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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신경 개인전. 노신경의 회화
시간의 풍경과 내면풍경, 그리고 관념적인 풍경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동물은 순간을 살고, 인간은 시간을 산다는 말이 있다. 시간은 인간의 발명품이라고도 했다. 동물에게 순간은 부분이 아닌 전체이기에, 매번 순간이 전부이기에, 매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고, 여기에 의미가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다(?). 반면 시간은 순간과 순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깊고, 순간을 지속을 위한 한 계기로서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이처럼 시간에 대한 인간의 인식으로부터 이러저런 파생개념들, 이를테면 관계에 대한, 사이에 대한, 지속에 대한, 흐름에 대한, 원인과 결과 곧 인과에 대한 자기반성적 사유가 가능해진다. 시간을 시간 자체로서보다는 의미화를 위한 한 과정으로 보고, 순간을 순간 자체로서보다는 지속된 흐름의 한 지점이며 계기로서 보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에게 순간은 현재에 정박하게 해주는 당위로서보다는, 도래할 시간이며 미래의 사건을 예비하고 예시해주는 의미의 씨앗이 된다. 이로써 기다림 곧 도래할 시간이며 미래의 사건에 대한 지향은 인간의 숙명이 된다. 어쩜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현실이랄 수 있을 것인데, 유독 인간에게 현실은 과거를 되불러오고 미래를 지향하는 한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향수와 회고, 배신과 복수, 화해와 용서, 변화와 혁명의 계기로서만 의미를 갖는다(여기에 인간 삶의 드라마가 있다). 그러므로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어쩜 인간에게 진정한 현실인식(엄밀하게는 현실 자체)은 없다고도 얘기할 수가 있게 된다. 현실을 현실 자체로서보다는 의미화의 한 과정으로 보고, 시간을 사는 대신 시간을 헤아리는 동물이라고나 할까. 그러므로 예술을 원초적인 행위이며 상황논리의 표현으로 본다면, 시간을 헤아리는 행위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예술표현이 된다. 이로써 그 자체로는 형태도 색깔도 없는 시간을 가시화하려는 시도들이 예술의 명분으로 호명되는 이유도 덩달아 설명할 수가 있게 된다. 이처럼 의미화의 동물인 인간에게 기다림은 숙명이라고 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기다림은 여성의 운명과 관련이 깊다.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기다림의 또 다른 형식인 그리움으로 목이 길어진, 물레질이나 바느질로 날밤을 새는, 동서양을 통 털어 발견되는 여성주체의 생활사 내지 여성신화들이 이런 운명을 증언해준다. 그리고 그렇게 여성주체가 찾아낸 것이 바느질이며 자수다. 자수는 말하자면 기다림의 표상이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고스란히 침전된 기다림의 물적 형식(기다림이 육화된 형식?)이면서, 기다리는 시간 자체를 의미화하고 의식화한 자기반성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시대며 세태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인간에게는 그리고 특히 여성주체에게는 여전히 이런 기다림의 DNA(원형적 DNA?)가 유전된다고도 할 수가 있겠다. 그러므로 정도와 경우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개 시간에 물적 형식을 부여하는 예술표현은 이런 인간의 근원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