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김정란 展 " 21세기 미인도 II " 가나아트스페이스 2015/3/11~3/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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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우먼아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작성일 15-03-13 13:50 조회 9,255회 댓글 0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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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초상화 이번 전시는 2010년 7월에 있었던 <21세기 미인도>의 후속 전시이다. 비단에 세밀한 붓으로 피부 결 한 땀 한 땀을 그려가는 이 그림은 우리나라의 전통 초상화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전시에서 주목되는 점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여성들의 모습을 조선시대 전통 초상화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옛 기법의 답습이기 보다는 그 기법들을 연구, 발전, 심화 시키고 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인물화가 보기 드문 우리나라 미술사에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조선 후기의 초상화는 세계적으로도 높이 평가를 받고 있으며 피부질환 연구에도 쓰일 만큼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이성락,「우리나라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병」 조선시대의 초상화가 성행한 이유는 유교의 기본 이념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정교를 선양하고 신민을 경계하라’ 宣揚政敎 警戒臣民는 감계적인 의미를 가지고 나라에 공이 있는 공신들을 초상으로 남기게 하여 백성의 귀감이 되도록 하였으며, 공신과 함께 기념비적인 의미를 강하게 띠는 기로도상은 壽, 貴, 德을 겸비한 노인들로 그 정신의 거룩함을 기록하려는 의미가 크다. 이렇듯 기록적인 의미와 성리학의 실천으로 공적·사적으로 그려진 초상화의 대상은 주로 후손들에게 기억될 만한 숭고하고 거룩한 정신의 소유자들 인데 대부분이 남성의 모습이다. 그러나 여성의 초상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부상을 제외하고 여성의 단독상만 본다면 <하연부인상>, 광양군 시모집에 <시모상>, 신정왕후 <조대비상>, 채용신의 <운낭자상> 등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렇듯 조선시대에 여성의 초상화가 적은 이유는 “男尊女卑”, “官尊民卑”, “長幼有序” 등 신분의 위계질서 상 여성의 위치가 낮은 것에서 비롯된다고 조선미 교수는 밝히고 있다. 「한국 초상화의 유형 및 사회적 기능」,『초상화 연구』, 문예출판사, 2007, p. 109 그러나 과거 남성우월주의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20세기는 여성을 발견한 세기라고 일컬어질 만큼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의 논쟁이 활발하게 일었다. 페미니즘 운동은 1837년 프랑스의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 1837)가 처음 féminisme라는 단어를 도입한 이래 그동안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으로 확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20년대 이후 전개된 페미니즘 담론은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나는 나의 그림들을 통해 해묵은 페미니즘 논쟁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여성들이 속출하고 있는 이 시대에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위대한 여성들의 모습을 존중과 권위의 상징인 초상화로 담고자 한다. 초상을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기록이나 기념을 위한 사진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초상을 그린다는 것은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업적을 기리고 기억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표적으로 위대한 여성의 모습을 초상화로 남기면서 그들을 기억시키고자 한다. 조선 시대 초상화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먼저 Queen이라는 호칭이 너무나도 당연한 우리나라 첫 여성 대통령 박근혜를 초상화의 모델로 하였다. 가족사 적으로도 정치사 적으로도 논란이 많이 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나의 그림은 어떠한 정치적 교차점도 없다. 나의 관심은 여성으로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되었고 그 자체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포브스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 11위”로 선정된 바 있다. 두 번째 인물은 우리나라 미술계를 움직일 수 있는 큰 인물이라는 의미에서 홍라희 여사를 대상으로 하였다. 홍라희 여사는 2010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월간 아트프라이스 선정 “올해 국내 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뽑히고 있다. 미술계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은 대통령 이상임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다음은 피겨 여왕 김연아를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선택하였다. 김연아는 국민요정으로 불릴 만큼 전 국민의 영웅이다. 김연아의 영향력은 이곳저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잡지인 타임지에서는 2010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온라인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리고 그녀의 가치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로 국가적 영향력을 발휘한 바 있다. 네 번째 인물은 봉사와 헌신의 여왕 이라는 이름의 배우 김혜자님 이다. 그녀는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 전쟁과 재해로 모든 것을 잃은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그가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한 개인으로서 힘없는 자들의 삶을 바꿔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의 고통을 같이 나누고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는 사람이 우리 시대에는 필요하다. 바로 그녀가 그러한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배우라는 화려한 직업을 뒤로하고 틈나는 대로 약한 이들에게 도움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다. 다섯 번째 인물은 한류의 여왕으로 이영애를 꼽을 수 있겠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지금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녀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중국에 초등학교를 설립한 바 있고, 암 투병 어린이를 위해 기꺼이 선행을 감당하여 대만 周大觀문교재단이 주는 ‘세계생명사랑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자신의 받은 것들을 다시 돌려주는 德을 지닌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황금자 할머니는 20세기에 태어나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 비참한 삶을 연명하다가 2014년 1월 세상을 떠났다. 황금자 할머니는 13세에 일본군에게 강제로 연행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대인기피증이 있어 평생 혼자 살면서 폐휴지를 모아 생계를 유지했지만 그렇게 모은 돈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전달되고 있다. 황 할머니는 여왕으로 칭호 받을 만한 위대한 업적도 영향력도 없다. 그러나 힘없는 나라에서 태어난 죄로 모진 인생을 살다간 그 억울함을 이렇게나마 위로해주고자 하는 마음에서이다.
19세기 카메라의 혁명이 시작된 이래 회화의 종말에 대한 논쟁은 끝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적인 모사를 위주로 했던 모더니즘 이전 서양 미술에서 카메라의 등장은 회화의 정체성에 위기가 되었다. 수 천년 동안 이어져 온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는 카메라의 발명으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고, 급기야 프랑스의 화가 들라로슈(Paul Delaroche, 1797~ 1856)는 사진 발명 후 회화는 죽었다고 공언하였다. 세계가 서구화 되면서 동양도 마찬가지의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시적 감흥으로 그림을 시처럼 그려내는 문인화와는 달리 대상을 정밀하게 그려야만했던 기록 위주의 화원 그림들은 카메라의 등장으로 그 의미가 무색해져 버렸다. 이제 회화는 있는 대상을 그대로 모사하는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저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진술이 발달하면서 복제 과정의 임무는 손에서 눈으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눈은 손이 그리는 것보다 더 빨리 대상을 포착하며, 손이 포착할 수 없는 부분까지 기록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손이 그리는 유일무이한 독자성을 사라지고 진품 이라는 의미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러한 논의가 시작된 것도 거의 한 세기가 지나고 있다. 복제 기술은 이제 너무나 급속히 발전하고 확장 되어서 ‘손에서 눈으로’를 넘어 ‘눈에서 눈으로’ 진행되어가고 있으며, 양적인 면에서도 엄청나게 거대해져서 현재는 이미지가 공해가 되어버린 실정이다. 한 인터넷을 검색창에 ‘박근혜’를 입력하면 1초 만에 256,322건의 이미지가 열린다. 그러한 가운데 나는 손으로 피부 결 한 땀 한 땀을 그려 나간다. 마치 장인과도 같은 그 반복된 행위는 길게는 한 달 가량 이어지기도 한다. 기술복제 시대에 1초도 되지 않는 복제의 과정에 시위라도 하듯이 말이다. 수 없이 많은 이 이미지들은 실재 대상에서의 복제가 아니라 복제의 복제로 떠돌아다니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렇게 수많은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눈에서 손으로 복제한다. 나는 이런 저런 이미지들을 모아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나의 이미지는 유일성 이라는 진품의 아우라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이미지이다. 가장 가벼운 이미지들을 모아 묵직한 무게를 담은 일회적 가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의 진화는 끝이 없이 발전하고 있으며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단지 포착의 기능만을 충실히 감당 하던 카메라는 점차 사라지고 스마트폰 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일상 속에 스며들면서 기다리고 조준하는 대신 아무 때나 수시로 무엇인가를 담아 버리는 행동이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손가락 하나만 터치하면 되는 빠른 스캔 과정에서 화가들은 더 이상 불필요한 스케치를 하지 않는다. 남기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연필이나 스케치북이 아닌 스마트폰을 꺼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또 작품을 위해 찾는 이미지 역시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니터와 인쇄물에서 나오는 것이 상당 하다. 남아공 출신의 작가 뒤마(Marlen Dumas, 1953~)의 경우 역시 전형적인 표현주의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미지의 모티브는 인터넷과 신문, 잡지에서 차용한다.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場이 열린 것이다. 회화가 자신의 역할을 사진에게 내어주고 회화 장르의 존속을 위해 새로운 정의 내리고 있는 이 때, “내가 그리는 초상화는 어떠한 의미를 가질 것인가?” < ~ ~의 초상>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전시에서도 보수적인 의미의 초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회화는 과거의 복제 수준을 넘어 다른 가치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에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