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화는 가을을 특히 좋아하고 그림의 주제로 즐겨 그린다. 그러나 그의 가을은 늦여름이 남아 있는 초가을, 혹은 겨울의 길목으로 가는 늦가을, 즉 경계선에 있는 계절이다. 해바라기는 여름과 가을의 경계선에 있는 꽃이며, 낙엽은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에 있다. 허정화 는 언제나 경계선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한국화의 전통적 재료, 기법, 화론을 손에 놓지 않으면서 서양미술가와 서양철학과 서양미술이론에 관심을 갖는다. 허정화가 집착하는 한지위에 반투명한 색채를 겹쳐놓은 착색기법은 ‘로스코가 추구한 빛’과 ‘수묵화의 먹의 농담‘의 경계선에 있으며, 그리고 선적 드로잉은 한국화에서 전통적으로 강조되어 온 화법인 ‘기운생동’과 ‘클레의 음악적인 선’사이 를 왕래한다. 이렇듯 허정화는 전통적인 한국화를 현대미술로 번안하길 원하며, 동시에 현대미술을 한국화에 접목시키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