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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불이(不二): 여성과 자연 - 김미진(홍익대미술대학원교수, 기획&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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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不二): 여성과 자연1)

김 미 진 (홍익대미술대학원교수, 기획&비평)

1. 들어가며

서구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 오던 현대미술은 내용과 형식의 모든 면이 해체가 되고 제3세계의 지역적 특성과 가치를 결합하면서 ‘글로컬’ 개념으로 오늘날 미술의 특징을 만들어 가고 있다. 현대미술 안에서 한국화는 평면장르라는 큰 틀로 해석될 수 있으나 이 시대의 한국화작가들은 전통이 갖는 고유한 형식과 내용의 미적가치를 갖고 새롭고 다양한 기법, 주제, 재료들로 장르적 실험을 해야 하는 특수성에 놓여 있다.  
한국화여성작가회는 1999년부터 현재까지 약 200 여명의 작가들로 구성되었으며 이런 한국화의 특수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매년 세미나와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작가 개개인의 작업은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다양한 감각적 표현으로  섬세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지만 한국화여성작가회 대부분의 작가들은 ‘여성과 자연’이라는 누구나 공감하는 한국적 미의식과 근원적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 주로 자연을 소재로 삼고 전통적 흑백수묵화방식보다는 채색화를 사용하며 동양화 공간을 단순하게 재해석 하는 등으로 공통점을 추출할 수 있다.  
한국화 여성작가들이 자연과 동일시하며 그것을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동아시아 근세보편철학이었던 리기理氣론의 주자학에서 실천의 논리를 더하여 한국적 정체성의 성리학을 구축한 퇴계를 통해 탐구해 본다.   
2. 불이(不二): 퇴계의「팔월십오야서헌대월 八月十午夜西軒對月」

동양에서는 자연은 홀로 존재하고 저절로 있는 상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자연은 사람의 의도적인 행위와는 다르게 그 스스로가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의 경우 교육과 학습의 방법에서 시간의 경과와 공력의 축척에 따른 자연발생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강조할 때 ‘자연’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서양미학에서의 자연은 신이 창조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신의 세계, 형이상학, 관조의 대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자연미를 닮은 한국미술은 부드럽고 평화로우며 인간미가 있고 가식이 없으며, 사람의 냄새를 뺀 형, 색, 자연 그 자체의 것이며(김원룡), 자연과 닮은 삶으로 부터 나온 미적 정서를 갖고 있고 (정양모), 구수한 큰 맛(우현 고유섭)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소박함, 순수함, 고졸함, 덤덤함이라는 관념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퇴계는 조선의 풍토에 성리학 사상의 이론을 확고하게 정립하여 성리학의 철학적 수준에 한국 유학의 특성과 방향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주자(1130-1200)를 표준으로 삼아 도학의 철학적 근거를 밝히고 인격적 실천을 추구하였다.  
그는 성리설을 개념적으로 체계를 세워 분석하였고, 수양론을 통해 실천하는 방법을 긴밀하게 연결하여 상호 조명하였다. 한국의 퇴계성리학은 이런 주자학의 영향을 받았지만 우주와 자연, 사회를 인간의 본질과의 관계를 통해 조화롭고 균형 있게 사는 삶에 더 중점을 둔 학문이었다.  
퇴계는 조정에서 벼슬을 하는 동안 외에는 거의 대부분을 고향에 머물렀으나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며 수양하기 위해 웅장한 경치가 있는 곳이 아닌 조용하고 아담한 곳을 옮겨 다니기도 했다. 그는 자연의 신선함으로 마음을 정화시켜 갔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뿜어내는 지혜의 빛으로 자연을 더욱 아름다움으로 비추어 주었던 것이다.  
퇴계는 이런 자연적 환경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젊은 날부터 시를 쓰는 것을 좋아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철학적인 사유와 시적사유가 어우러지는 독자적이고 새로운 세계를 드러내었다. 그는 평생 동안 약 2000여 편 이상의 한시를 썼다. 다음은「팔월십오야서헌대월 八月十午夜西軒對月」의 해석을 통해 그가 담아낸 자연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밝은 달은 하늘에 있고 明月在天上,
그윽이 묻혀 사는 사람은 창 아래에 있다 幽人在窓下.
금빛 물결이 맑은 못에 굽이쳐 흐르되金波湛玉淵, 
워낙 둘이 아니라 本來非二者

퇴계의 이 시를 해석해 보자면 “밝은 달은 하늘에 있고”는 추석대보름 꽉 찬 둥근 달이 세상을 환하게 비출 때를 묘사한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우주 스스로의 시간의 법칙에 의해 초생달로부터 만월이 되었다. 달은 리의 법칙에 따라 하늘에 떠 있으며 우리 눈에 완벽한 둥근 달의 형태로 보인다. 
“그윽이 묻혀 사는 사람은 창 아래에 있다.幽人在窓下” 
사람이 그윽이 묻혀 산다는 것으로 봐서 그 사람은 자연에 오랫동안 살아 왔고 그 환경에 완전히 융합한 태도와 마음상태라는 것을 알 수 가 있다. 
“금빛 물결이 맑은 못에 굽이쳐 흐르되金波湛玉淵”
하늘아래 대지의 못에 있는 물은 안에서 흐르는 곳이 있어 맑다. 외부의 바람, 나뭇가지의 흔들림 등으로 물결은 흔들리고 비치는 달의 형태는 물과 하나 되어 부서지며 굽이쳐 밝게 드러낸다. 
“워낙 둘이 아니라本來非二者” 
밝은 달이 물결과 하나 되어 보여주는 금빛물결이 바로 워낙 둘이 아닌 하나 되는 ‘불이不二’를 말한다.
퇴계의 자연미는 외부에서 그 경치를 구경하러 들어간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오랫동안 자연과 화합된 몸과 마음을 닦은 사람이 온전히 자연의 이치와 맑은 못이 담아낸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은 움직임 속의 형상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이 고스란히 그 모든 것을 담아내면서 표현하는 미적 감정상태를 보여준다. 이것은 마음이 태극이 되는 것으로 사물과 나의 구별이 없고, 안과 밖의 구분이 없고, 나누어짐도 없고, 형체도 없이 한데 뒤섞여 일체를 온전히 다 갖추고 있음으로 하나의 근본을 말한다. 그래서 사물들은 이 속에 꽉 채워져 있어서, 이것이 세상의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형체도 없고 안과 밖의 구분도 없어 이 속에 채워져 있는 것은 마음이며 만물을 몸으로 삼고 세상을 다 싸안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불이不二’는 마음과 몸 그리고 자연이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하며 마음의 본체가 맑은 물과 일치되는 것을 말한다. 퇴계는 자연과 화합하는 마음에 대해 다만 말없이 더욱 노력하여 전진하기를 그만두지 않고 오랫동안 연습을 쌓아 완전히 숙달되기에 이르면 ‘자연히’ 마음과 이치가 하나가 되어 얻는 대로 잃어버리는 그러한 병폐가 없을 것이라 한다.
이 시에서 등장하는 자연을 관찰하는 창 아래에 있는 사람의 시선은 마음과 동일하다. 물과 주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점과 선 혹은 반짝이는 비정형의 달의 가시적 형태는 마치 비디오 매체의 시간예술처럼 이미지를 흘려보내면서 예술가의 그윽한 태도 안에 다 담아 둔다. 창문아래에 있는 사람은 그 태도로서 겸손을 상징하고 있다. 무심하게 말없이 변화하고 있는 자연을 관찰하면서 매번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게 되는 예술가는 겸허히 표현할 수밖에 없다. 
리(理)라는 자연의 이치를 매번 관찰하여 오묘한 변화를 함께 경험한  즐거운 마음의 예술가는 모든 인간의 욕심이 배제된 선한 상태로 작품에 몰입하고 그것은 고스란히 작품에 배어 있게 된다.       
예를 들면 한국 최고의 예술로 꼽히고 있는 조선의 달항아리를 만든 도공은 “그윽이 묻혀 사는 사람”으로서 땅의 기질과 하늘의 이치, 자신의 감성을 수평적으로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관찰과 연마를 해온 사람이다. 그는 쓸데없는 생각을 먼저 제거하고, 마음을 통일시켜, 저절로 생각을 고요하게 하는 일체가 되는 법을 터득한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고요하고 통일된 마음으로 사람의 완성됨을 지향하는 선비들이 사람의 마음을 연마하기 위해 경敬의 공부에 매달렸다면 예술가는 지속적이고 수많은 관찰과 작업뿐만 아니라 흙과 가마, 불의 조정까지도 일체가 될 수 있도록 수련하고 마지막의 가마 안에서의 공기와 그 어떤 요소가 작품과 만나게 되는 것(우연)까지도 수용한 사람이다. 그래서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갖는 최고의 예술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퇴계의 시「팔월십오야서헌대월 八月十午夜西軒對月」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이 자연처럼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이치가 하나 되는 것이 형태를 이룰 때 아름다운 미적가치가 생기는 자연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를 통해 자연스러움, 소박함, 순수함, 고졸함, 덤덤함, 검박함, 세련됨, 우아함, 명랑함, 대범함 등 한국 미술의 자연미를 상징하는 표현이 다양하면서도 긍정적인 것을 알 수 있다. 퇴계는 리가 변하기도 하여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에 미친다고 했다. 이것은 일본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말하는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무관심, 체념에서 나오는 무심함의 자연미와 다르며 중국의 노장의 무위자연이나 주희가 말하는 물에 억매이지 않고 오직 리만을 우위로 삼는 자연미와 차이가 있다. 

3. 맺으며- ‘불이不二’: 여성과 자연

한국화여성작가들의 자연에 관한 작업들은 너무나 당연한 근원적 정체성의 표현이다. 여성은 근본적으로 남성과는 달리 임신과 육아의 돌보고 양육하는 유동성과 포용성의 심리와 육체를 갖고 있다. 역사와 신화 안에서는 여성의 모성적 특징이 가이아의 지구나 ‘저절로’의 자연과 동질성을 갖는다고 하였다. 여성들은 이미 본성적으로 저절로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고 순응(겸손)하는 감각적, 육체적으로 열린 구조를 갖고 있는 자연과의 불이(不二)의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작가로서 이 과정에 더 귀 기울이며 감각과 기술을 연마하지 않으면 ‘불이不二’된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페미니즘의 언어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임신, 육아의 과정을 겪는 여성작가들은 남성작가들보다 더 꾸준하게 퇴계의 ‘말없이 더욱 노력하여 전진하기를 그만두지 않고 오랫동안 연습을 쌓아 완전히 숙달’되는 과정을 겪지 않으면 작품 활동을 하기 힘들다. 붓, 종이, 먹의 서로 스며드는 관계를 조절하는 수묵의 질료적 특성 역시 만나고 익숙하며 훈련하고 비우는 완전한 자연의 생사를 체득하는 경지까지 와야 작품으로 생명력을 갖는다. 작가들의 작품속의 이미지들은 자연과 이입되어 주변의 생명체들과의 관계를 상징으로 혹은 재현으로 부드럽고 유동적으로 품고, 받아들이고, 미묘하고 섬세한 색채, 반복적 구조나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시대적 매체의 화려하거나 스펙타클한 스케일의 형식과 구조에 비해 자칫 에너지가 약하고 소소하게 보일 수가 있다. 여성작가들은 이미 열린 감각을 받아들일 토대가 마련되어 있기에 쓸데없는 생각을 제거하고 오지탐험가처럼 좀 더 정신과 육체, 오감 모두 활짝 열어 살아있는 자연의 변화를 꾸준히 밀착 관찰하여 보다 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받아들이면서 작업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 자연과 불이되는 예술작품들은 새로운 관객들과 만나도 언제나 ‘저절로’라는 비물질성 안에서 해석이 가능한 소통을 불러일으키며 항상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열린 감각으로 긴밀하게 세상을 연결시키며 작업하는 한국화여성작가회의 작품을 기대한다.    

1) 이 글은 필자의 『영상문화』, 제28호. 2016.6에 개재된 「퇴계와 한국의 자연이미지」, 논문에서 발췌하여 편집각색 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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