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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의 붓질-윤진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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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한국화여성작가회의 역할

한국의 붓질전에 부쳐

 

 

윤진섭(미술평론가)

 

한국화를 전공한 여성 작가들의 모임인한국화여성작가회한국의 붓질을 주제로 아홉번째 정기전을 마련한다. 이 협회는 지금까지 정기전을 열면서 해마다 특색이 있는 주제를 설정하여 단순한 회원전이 아닌 주제전을 여는 전통을 수립해 왔다. 참고삼아 밝히자면 2006년도 제7회전의 주제는서울의 어제와 오늘이었으며작년에 열린 제8회전의 주제는 장자의 꿈이었다. 올해의 주제는 앞에서 밝힌 것처럼한국의 붓질이다.

 

이처럼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회원전을 여는 이 회의 의도는 천편일률적인 연례행사를 지양함으로써 회원들에게 전시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하는데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사실 백여 명을 상회하는 회원을 지닌 대규모 단체들이 적지 않은 화단 현실에서 협회의 뚜렷한 정체성을 확보하고 존재성을 부각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협회나 미술단체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다른 단체와의 차별화를 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화여성작가회 역시 이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현재 한국화 전공의 작가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로는 여럿을 들 수 있지만출신대학이 서로 다른 여성 작가들이 모여 결성한 것으로는 규모로 나 인적 구성 면에서 볼 때 이 단체가가장 뚜렷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주제를한국의 붓질로 설정했을 때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왜 굳이한국이란 수식어를 붙였느냐 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이 단체가 한국화 전공의 여성 작가들의 모임이란 사실과도 결코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대부분의 예술현상이 이른바 융합(Fusion) 현상을 보이는 가운데 유독 한국화 분야에서 예술적 순결주의에 기반을 둔 문화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에 인문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일고 있는통섭(統攝)’의 학문적 경향과도 배치되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튼 서로 독립된 분과 학문의 연구 성과로는 우주나 생명과 같은 복잡한 세계를 완전히 해명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필요가 통섭이란 학문적 방법론을 낳았듯이예술 역시 지나친 순결주의를 벗어나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새로운 문화적 지평을 창조해 나갈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한국이란 단어의 의미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예술적 순결주의라는 편협한 측면보다는 세계의 미술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보편적 미의 가치를 창출해 나가자는 보다 거시적인 입장에 가깝다. 그것은 협소한 작가의식이나 편협한 세계 인식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목표다.

한국의 붓질이란 주제가 내포하고 있는 특수와 보편의 중의적 가치는 붓질이 단순히 한국적인 특질을 담은붓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세계의 이해를 전제로 한 보편으로서의붓질이 동시에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우선 무엇보다 현상(現狀:status quo)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주변의 정세와 문화적 변동에 대한 회원들이 예리한 상황인식과 함께붓질을 통한 문화적 실천이 아울러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이다. 현대는 백여 년 이상 추진돼 온 서세동점에 의한 일방적 문화 수용이 최근 몇 년 사이에 형성된 강력한 아시아 제국의 부상으로 인하여 그 역조의 조짐이 점차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미래에 전개 될 아시아 의 문화전략은 아시아의 미적 가치의 발현을 통해 동서 문화예술의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한국의 붓질은 그 속에 내포된 미의 원리뿐만 아니라 그 실천적 대안으로서 다양한 방법론들이 개발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전통적인 준법(峻法)을 갈고 닦아 현대적인 생활감정과 색채감이 담긴 화면을 구축하는 일에서부터 새로운 매체의 수용 내지는 현대적인 재료의 도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실험을 전제로 한다.

 

한국화는 타 장르에 비해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한계는한국화라는 명칭 속에 이미 깃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적인 주제한국적인 재료한국적인 형식 등등한국이란 용어가 지닌 함의는 개방성보다는 폐쇄성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그 울타리를 허물고 부정적 함의를 긍정적인 함의로 전환시켜 나아가야 할 책무가 한국화여성작가회의 회원들에게 있는 것이다.